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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편] 선장님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The translated version of the Smash Novels will be here soon. Thank you.
자,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비가 내리고 있었지.
생각해보면 늘 그랬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비가 왔지. 집을 떠나 그 지긋지긋한 학교에 갈 때도, 그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도망치듯 쫓겨날 때도 말이야. 해적이 된 날도 생각해보면 비가 왔던 것 같아.
그리고 패배와 죽음의 냄새가 곁에 있을 때도, 늘 비가 왔지.
첫 해적선이 불에 삼켜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때도, 그 뒤 몇 번인가의 싸움 끝에 외딴 섬으로 도망쳤을 때도, 그 간악한 꼬맹이에게 팔을 잃었을 때도 비가 왔어.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패배와 죽음의 냄새가 가까이 있다고 느꼈지.
“쿨럭.”
해적으로 살다보면 별 일을 다 만나게 되지만, 나 원 참, 잘 있던 배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더니 뚝 떨어져 박살나는 일은 처음이더군.
배는 박살났지, 부하들은 어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지, 나도 배처럼 하늘에서 떨어져서 온 몸이 박살났지… 떨어진 충격에 팔도 다리도 부러졌는지 움직일 수도 없고, 누운 채로 피를 토하고… 정말, 일진 참 사나웠어.
무서웠냐고? 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무섭지 않았어.
본디 해적의 삶이란 죽음과 늘 가까이 있는 법이지. 하지만 해적은 그렇다고 두려워해선 안 돼. 언제나 당당하게, 설령 낫을 든 사신이 눈 앞에 있더라도 당당하게 맞서 싸워야 하는 법이지. 한 손엔 커틀라스, 한 손엔 피스톨을 들고 외치는 거야. 죽기 싫으면 가진 거 다 내놔! 하고 말이지.
자, 자,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진정하라고. 내가 멋있는 것과 해적이 멋있는 건 상식이니까 그렇게 흥분들 할 필요 없어. 이야기나 계속 해보실까?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렵지 않았던 건 해적이라서기 보다는, 내가 오래 살아와서 그랬던 것 같아. 드디어 올 때가 왔구나,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겠지, 하고 말이지.
너희들도 알겠지만, 나는 제법 오래 살아왔거든. 그렇게 오래 살다보면 뭐, 해적이 아니더라도 삶에 초탈해지기 마련이지. 그리고 사람이 늙으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거든. 뭐, 너희는 좀 다를수도 있으려나?
솔직히 말하면, 해적질도 슬슬 질려가고 있었어. 언제까지고 애들과 놀아주는 것도 지치고 말이지. 그렇다고 그냥 큰 맘 먹고 섬을 떠나서 다시 해적질을 시작하기에는, 또 나이가 문제고. 나이를 먹으니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고,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가겠지… 하는 시점에서 일이 터진 거란 말이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 하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에 집중하라고? 하여간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들 같으니… 뭐 좋아.
아무튼, 그래서 난 비가 내리는 밤에 혼자 바닥에 널브러져서는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었어. 주위에 사람의 인기척은 없고, 익숙한 섬의 모습도 아니니 어디 외딴 무인도에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방금도 말했지만 사신이 오면 커틀라스와 총을 들고 맞서 싸웠겠지만, 내 팔도 다리도 안 움직인단 말이지. 그래서 그저 사신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찾아온 건 사신이 아니었지. 크고 시커먼 다른 무언가였어.
바로 늑대였지.
이런 망할, 늑대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군. 하지만 뭐, 불평할 수 있겠어? 상처 입고 못 움직이면 사나운 동물들에게 잡아먹히고 하는 거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살아있나?”
그런데 늑대가 말을 하는 거야.
한 순간 죽음을 앞두고 있어서 헛걸 보는 줄 알았지. 그래서 그냥 대답해줬어. 어차피 죽을 상황인데, 이제와서 말하는 늑대에 깜작 놀라서 뭐가 남겠어?
“그래, 살아있지.”
“그렇군.”
내 대답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어. 아무래도 환상은 아닌 것 같았지.
딱 보면 알 수 있었어. 그 늑대도 나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는 걸. 아직 어린 너희들은 잘 모를지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런 게 느낌이 딱 오거든.
이 늑대는 나처럼이나 오랫동안 싸워온 늑대다. 그리고 해적인 나처럼, 남들이 칭찬해주는 일을 하며 살아온 건 아니구나. 그런 느낌이 왔어.
나를 내려다보던 늑대는 몸을 가까이 했어. 나는 날 잡아먹으려는 거라고 생각했지. 산채로 잡아먹히는 취미는 없으니까 적어도 죽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겠어? 금방 죽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참고 있던 통증 때문인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지.
몇 번인가 깨어나고 다시 기절하고 했지만, 그 사이에 내가 늑대에게 업혀서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어. 그리고 내던져지듯 내려진 통증에 정신을 차리자, 완전히 낯선 곳이더라고.
“환영하지, 후크 선장.”
바로 거기에서 위치 퀸을 만났지.
마치 책 속에 나오는 궁궐 같은 방이었어. 뭐, 이 나도 궁궐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까,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닥에는 기다란 카펫이 깔려 있고, 벽과 기둥도 어두운 색의 고급스러운 석재를 썼더군. 벽에는 벽걸이 횃불이 조명으로 달려있는데, 붉은 색이 아니라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흔들리고 있었어.
해적은 뱃사람이고, 뱃사람은 감에 민감하지. 늘 바닷바람을 쐬다 보니, 민감해지지 않을 수가 없거든. 지금은 바람이 어떻게 불고 앞으로 어떻게 불지, 바다는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좁은 배 안에서 지내니, 실내에 있어도 방향이나 구조에 민감해지고. 그래서 알 수 있었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착한 곳은 아주 깊은 지하나 건물 안이라는 걸.
그 안에서 위치 퀸은 왕좌 같은 의자에 앉은 채 거만하게 웃고 있었어. 그 검은 코트와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는 채 말이야. 주위에는 늑대들이 가득했지. 모두들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옷도 입고 있더라고. 응? 그게 이상하냐고?
“당신 같은 유명한 악당이라면 더 거창한 환영을 해줘야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여유는 없으신 것 같아서, 일단 조촐하게 만나보기로 했지.”
아무튼, 위치 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어. 묘한 웃음을 띈 채, 한쪽 손등으로 턱을 받치면서 말이야.
“그런데 생각보다 나이가 드신 분이었군. 난 내 또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거 미안하게 됐구만. 그래서, 젊은 아가씨는 누구시지?”
놀리는 것 같은 말투에 기분이 상해서 나도 슬쩍 비꼬며 말하자, 위치 퀸은 웃더라고. 아마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
“내 이름은 위치 퀸. 언젠가 모든 이야기를 지배할 여왕이지.”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어. 그런 내 태도가 드러났는지, 위치 퀸은 싱긋 웃으며 말하더군.
“아, 그러고 보니 후크 선장님은 이곳에 지금 막 도착하셔서 아직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시겠군. 걱정하지 마시죠, 다 설명해드릴테니.”
위치 퀸은 설명을 시작했지.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가 어떤 곳인지 말이야.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는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세계. 이 후크 선장도 이야기 속의 인물이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이로 이 세계에 왔다… 그런 이야기인가?”
“어머, 생각보다 놀라지 않으시는군.”
내가 이야기를 정리하자, 위치 퀸은 아쉽다는 듯 말했지. 아무래도 내가 놀라길 바랬던 모양이야. 하지만 말했듯이, 나이를 먹으면 별 꼴을 다 보고 살기 마련이지. 게다가,
“저렇게 두 발로 서있고 말하는 늑대들을 봤는데, 새삼스럽게 그럴 리가 없다느니 말도 안 된다느니 하는 능청은 떨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아까 누가 물어봤지? 늑대가 두 발로 걷고, 옷도 입고 있는 게 이상하냐고.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태어난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원래 내가 살던 이야기 속 세상에서는 늑대는 네 발로 걷고, 말도 못 했다고. 그야말로 이야기 속에서나 사람처럼 행동했지. 그래서 대충 이해할 수 있었어. 아, 여긴 동화 같은 세계구나, 하고 말이야.
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이 전부 이야기 속 내용이었다니 그건 좀 허탈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응? 그게 왜 허탈하냐고? 아직 어린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처럼 나이가 들면… 아니, 관두자. 이야기나 계속하자고.
위치 퀸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어. 재미있다는 건지, 아니면 내 대답이 흥미로웠던 건지, 내려다보는 듯한 거만한 자세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말이야.
“과연 명망 높은 후크 선장, 이렇게 모시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좋게 봐줘서 고맙지만, 그럼 이제 왜 이렇게 모셨는지 설명을 좀 해주겠어?”
비아냥 거리는 투로 말했지만, 위치 퀸은 내 말 뜻을 못 알아 들은 건지, 아니면 그저 무시한 건지 그저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지. 후크 선장, 당신을 이렇게 모신 건, 우리 ‘움브라’에 들어오지 않겠냐 물어보기 위해서였어.”
움브라. 위치 퀸이 각종 이야기의 악당들을 모아 만든 조직이었지. 이미 너희들 모두 알고 있을 테지만 말이야.
“후크 선장, 당신은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명망 높은 해적이자 모두의 공포여야 할 당신이, 고작해야 꼬맹이에게 매번 지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꾀를 부려도, 결국에는 그 꼬마가 이기고 말지. 그게 정해진 ‘이야기’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 그게 사실이긴 했거든. 하지만 그것보다, 위치 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어. 달콤하게, 마치 들러붙는 듯한, 유혹적인 목소리였지. 난 문뜩 해적일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 바다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아야 한다고 하지. 세이렌이 달콤한 노래로 유혹해, 선원들을 바다로 끌어들인다고 하거든. 위치 퀸의 목소리는 딱 그런 느낌을 전해줬어. 뭐, 세이렌의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곳에 올 때 다친 그 몸도, 움브라에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말끔하게 고쳐줄 수 있지. 아니, 더 강한 몸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어. 젊고 강했던, 당신의 전성기 때의 몸으로 말이지. 그리고 언젠가 우리 움브라가 모든 이야기를 지배하게 됐을 때, 그에 걸맞은 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후크.”
솔직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지. 확실히 혹하게 되는 이야기였어.
너희들은 지난 번에 그 녀석이 내 검을 훔치러 왔을 때의 인상만 있겠지만, 그렇게 보여도 그 녀석은 내 오랜 숙적이었어. 아주 오랫동안, 난 녀석을 이기려고 기를 써왔지. 온갖 작전을 세우기도 하고, 음모를 세우기도 하고… 그렇지만 한 번도 이기질 못했어. 늘 좋은 곳까지는 끌고 가도, 꼭 뭔가가 방해를 했지.
그게 단순히 운일 뿐이라고, 다음 번에는 반드시 그 꼬맹이를 이길 거라고, 그렇게 늘 마음 먹었었지. 그런데 그게 전부 정해진 이야기의 결과고, 악당인 나는 어떻게 해도 주인공인 그 꼬맹이에게 이길 수 없다니, 김이 빠진 것도 사실이야.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
“정중한 초대와 융숭한 대접은 고맙지만 그 제안은 거절해야겠군, 위치 퀸.”
“...이유를 들려줄 수 있을까?”
내가 당연히 승낙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웃고 있던 위치 퀸은 내 대답에 표정을 굳히며 물었지. 그 변화가 재미있기도 해서, 나는 히쭉 웃으며 말했어.
“당연한 거 아냐? 명망 높은 해적 선장으로서 남의 부하, 그것도 해적도 아닌 마녀의 부하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렇군.”
내 대답에 위치 퀸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결국 입을 열었어.
“그렇다면 환영은 여기까지 하지, 후크. 나를 따르지 않겠다면 필요 없으니까 말이야.”
위치 퀸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탁, 하고 튕겼지. 그 동작에 방을 지키고 있던 늑대들이 우루루 몰려들더니 나를 들어올렸지.
그리고 그렇게 다시 비오는 바깥에 버려졌어.
“그냥 이렇게 버리고 가는 거냐, 이 막되먹은 놈들아!”
있는 힘껏 외쳤지만,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
“이 거지같은 섬에 두 번이나 버려지다니!”
아까는 죽음이 다가와도 그냥 그러려니 할 기운이라도 있었지만, 정말 필요 없는 쓰레기 취급 받으며 버려지니 그럴 기운도 안 나더군. 하지만 뭐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어. 처음에 응급치료 정도는 해준 것 같았지만, 온 몸이 박살난 건 여전했고 내 힘으로는 손가락도 하나 까딱할 수 없었거든.
차라리 위치 퀸의 제안을 받아들여 치료를 받은 다음,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게 나았으려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 비겁? 잘 알아둬. 해적에게 있어서 배신과 뒤통수 치기는 훈장 같은 거라고. 물론 날 배신하려고 든다면… 뭐, 베짱은 가당하다고 해주지!
의지로 버티려 했지만, 결국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가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 내 해적의 길도, 악행도 모두 여기까지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결국,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지…
죽었냐고? 그럼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해주겠어?
다시 눈을 뜨니, 모르는 천장이 보였지.
아주 깔끔하고, 난생 처음 보는 재질로 만든 천장이었어. 익숙한 범선의 천장이나 술집의 천
장 같은 것과는 달랐지. 거기에 램프도 아니고 횃불도 아닌데 밝은 빛이 나오는 것까지 달렸더라고. 한 순간 내가 결국 죽어서 천국에 왔나 싶었지만, 이내 깨달았지. 해적이 죽어서 천국에 가다니, 그게 무슨 망신이야?
그래, 그래, 그게 형광등인건 이젠 나도 알아. 그래, 난생 처음 보는 천장이라는 건 콘크리트나 시멘트겠지. 하지만 내가 있던 이야기 속에는 그런 게 없었단 말이야. 내가 바보인 게 아니라, 그런 게 없던 시대의 이야기였다고. 그러니 다들 조용히 하고 내 이야기나 계속 들어줄래? 자꾸 시끄럽게 굴면 이야기 그만 둔다? 고맙군.
아무튼, 내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는지 간호사들이 소란스럽더군. 그제야 내가 병원에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어. 간호사들이 사람도 있었지만, 동물이나 너희 같은 녀석들도 보이는 건 여전히 신기했지만, 아무튼 살았다는 건 알 수 있었지.
그런데 내 몸을 다시 보니, 신기했단 말이지. 분명 다 죽어가고 있던 노인이었는데, 이상하게 온 몸에 힘이 넘치는 거야. 갈고리로 만든, 내 이름이 되기도 했던 손도 멀쩡한 손으로 바뀌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지만, 간호사들은 금방 알게 될 거라면서 뭔가 기록을 하고 검사만 하더라고.
그리고는 내가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나를 데려갔지.
안내받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가 가장 먼저 놀란 사실은 창문 밖 광경이었어.
아니, 창문 때문에 놀란 건 아니야. 그야 그렇게 통째로 된 유리창은 처음 봤지만, 나도 해적으로 오래 살면서 창문도 본 적 없는 건 아니라고. 너희들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응? 내가 놀란 건, 창문 밖에 펼쳐진 도시의 모습과, 그 높이 때문이었어.
우선 내가 엄청나게 높은 곳에 있다는 게 놀라웠지. 이렇게 높은 건물이 있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거든. 그리고 창 밖으로 펼쳐진 거대한 도시도 놀라웠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높은 빌딩이 수십채나 있고, 그 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기구며, 동화나 이야기 속에나 나올 생물들이며… 정말 내가 다른 세상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지. 그런 걸 본 적도,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상상한 적도 없었거든.
“오셨군요, 후크 선장님.”
그 다음으로 놀랐던 건, 방 한 가운데 있던 애송이 때문이었어.
아, 애송이라고 해도 그 녀석이었던 건 아냐. 나이는 아마 그 녀석이랑 비슷할 것 같았지만, 뭐랄까… 그 녀석이 정말 어린애라는 느낌이라면, 그 애송이는 애늙은이 같은 녀석이었지. 어른인 척 하려는 어린애라는 느낌이랄까.
깔끔한 좋은 옷을 입고, 단정하게 잘 생긴 애송이. 분명 좋은 학교를 나오고 왕자님이니 귀족이니 하는 녀석이겠지 싶었지. 꼭 나 어릴 때를 보는 거 같아서 기분은 별로였지만. 이봐,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건데? 아무튼, 딱 보니 알 수 있었어. 이 건물의 주인도, 날 구해준 것도 그 애송이의 짓이라는 걸.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전 스노우라고 합니다. 이 회사, 7D의 대표를 맡고 있죠. 앉으시죠.”
스노우라고 자신을 밝힌 애송이는 정중하게 나를 대접했지. 뭐, 일단 정황상 애송이가 날 구해준 건 사실이니, 이야기는 들어봐야겠다 싶었지. 어떻게 날 구해준 건지, 그리고 왜 내게 손이 돌아와있고, 몸도 이전보다 기운이 넘치는지 말이야.
“보아하니 새 몸은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군요.”
그리고 애송이는 어쨌든 높은 자리에 올라갈만한 인물인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꿰뚫어보고 있더군. 솔직히 대표라고 소개해도 애송이라고 얕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평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꼬맹이처럼, 어린애라고 얕보면 안 되겠다고.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 설명해드리죠.”
내 시선을 읽었는지 애송이는 말했지. 솔직히 그리 기분 좋은 태도는 아니었어. 어린 것이 마치 전부 알고 있다는 듯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것 같아서.
“여기가 동화들이 모이는 세계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 부분은 빼고 설명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스노우는 이야기를 시작했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제야 좀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더라고.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원래 라이브러리 월드를 관리하는 조직 ‘현자회의’가 있었지. 얼마나 오랫동안인지도 모를 시간 동안 이들이 라이브러리 월드를 관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불만인 이들이 나타났다더군. 그게 바로 위치 퀸과 움브라고.
“위치 퀸과 움브라는 이들을 몰아내고 새로 라이브러리 월드를 지배하려는 세력이고, 애송이, 스노우의 7D는 현자회의의 편에서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이라 이거지?”
“그렇게 보셔도 좋으실 겁니다.”
내 말에 스노우는 고개를 끄덕였지.
“그렇다면 이렇게 날 정중히 모셔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날 회유하려는 것 같은데, 이야기 속의 악명 높은 악당이자 해적인 나를 회유하려고 하는 거라면, 솔직히 멍청한 생각인 것 같은데. 해적은 질서를 싫어하거든.”
해적은 말이지, 자유로움이 생명이야. 너희들도 잘 알아두도록. 질서라는 건, 바꿔 말하자면 규칙이 있다는 거고, 그 규칙에 동의한 적도 없는데 지키도록 만들지. 해적들에게도 규칙이라는 건 존재해. 하지만 그건 해적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만든 규칙이지. 질서 운운하는 놈들은, 자신들이 만든 규칙을 남들에게도 강요하고 말이야. 다들 지킨다면서.
내 지적에 스노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지.
“그 점은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래서 저도 걱정했고요. 하지만 이미 당신이 위치 퀸과 접촉했고, 움브라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거절하셨다는 걸 전해들었거든요.”
“조사를 많이 하셨군?”
“함께 싸울 동료를 모집하는 일인데, 그 정도도 하지 않으면 곤란하죠. 당신에게 기계 몸을 선물해드린 것도 그런 연장선이고요.”
기계 몸. 그건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어. 그때까지는 상상도 못 했지만, 이 라이브러리 월드의 기술력으로는 기계로 된 몸도 만들 수 있더군. 없어졌던 팔이 생긴 것도, 다 늙어 힘도 없던 몸에 힘이 넘치는 것도 그 덕분이었지. 게다가 감각도 있어서 꼭 진짜 젊었을 때의 내 몸으로 돌아간 것 같았어. 그때보다 힘이 넘쳤지만. 불편했던 갈고리 의수랑은 다르더라고.
“그런데, 내 갈고리는 어디로 갔지?”
“그쪽이 더 편하셨나요?”
“그럴 리가! 멀쩡하게 움직이는 손이 훨씬 편하지. 그렇지만 내 이름이 될 정도의 상징이었으니, 없어지니 좀 허전해서 말이야. 만약 버렸다거나 하면 꽤 화가 날 것 같을 정도로.”
슬쩍 떠볼 생각으로 말하자, 스노우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말하더군.
“그럴리가요. 그건 따로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스노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들어왔던 문이 열리고 누가 들어오더군. 그게 누구였지? 아, 맞아. 스미! 바로 너였지. 여기 있는 스미가 커다란 뭔가를 들고 들어왔지. 스노우의 지시에 스미는 감싸고 있던 천을 풀었어. 그 안에는… 뭐, 다들 알겠지. 거대한 검이 있었지. 손잡이에는 내 갈고리가 달려 있는.
“당신을 위해 만든 ‘갈고리검’입니다. 들어보시죠.”
스노우의 말에 스미에게서 검을 받아 들어봤지. 원래 내가 쓰던 칼이랑은 달랐지만, 이상하게 몸에 잘 맞더라고. 그래, 정말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커다랗고 척 봐도 무겁게 보였지만 휘둘러보니 한 손으로도 가볍게 휘두를 수 있을 정도였어. 내가 감탄하고 있자 스노우가 뻐기듯 말하더군.
“그 기계 몸의 힘이 있으면, 지금 하신 것처럼 아주 가볍게 휘두를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검에도 우리 7D의 기술력이 들어갔으니, 누구를 상대로도 무기가 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애송이의 자랑하는 말투에 조금 빈정이 상한 건 사실이었지만, 몇 번 휘두르다보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하더군. 솔직히 말하면, 주는 건 아무 것도 없는 위치 퀸 그것보다는 마음에 들었어. 기계 몸도, 갈고리검도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으니까.
내가 검에 취해 있는 사이 스노우가 말하더군.
“후크 선장님, 당신은 오랫동안 해적으로서 싸워온 경험이 있으시죠. 그 기계 몸이 있다면, 그 경험을 젊었을 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스노우는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강한 말투로 말했지.
“위치 퀸은 움브라를 통해 라이브러리 월드를 제멋대로 지배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습니다. 만일 그걸 이룬다면, 분명 지금 이상으로 라이브러리 월드를 억압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폭정을 이루려 하겠죠. 그렇게 되면 위치 퀸에게 찬성하지 않은 악당인 후크 선장님, 당신 역시 무사하지는 못할 겁니다.”
“으음…”
“그 검을 받고 우리와 함께 움브라에 맞서 싸워주십시오. 우리가 함께 손을 잡는다면, 위치 퀸과 움브라를 무찌르고 라이브러리 월드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스노우는 당당하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지. 솔직히 고민됐어. 정의의 편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지만, 스노우의 말대로 위치 퀸이 라이브러리 월드를 지배하면 나한테도 좋을 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라고 덥썩 무는 건 삼류나 하는 짓이지. 나는 삼류가 아니잖아? 삼류 악당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지. 그래서 대답했지.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겠나?”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스노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물론입니다. 그 기계 몸에 익숙해지시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테고, 저희가 조정해드리는 시간도 필요할 테니 생각하시는 동안 이곳, 7D에서 편하게 쉬시도록 하시죠.”
녀석, 그때 표정이랑 말투를 생각하면 내가 다 넘어왔다고 생각했을 거야.
스노우는 스미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지.
“이곳에 있는 동안, 그 안드로이드가 후크 선장님을 도와드릴 겁니다. 뭐든 필요한 대로 명령해주세요. 잘 따를 테니까요.”
“안드로이드… 그게 이 기계들을 부르는 말인가?”
“네. 우리 7D가 개발한 로봇들입니다.”
내 질문에 스노우는 고개를 끄덕였어.
“원래는 각종 잡일 같은 일들이나, 움브라에 맞서 싸우는 일을 대신하게 하려 개발했지만… 이미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등장인물들이 넘쳐나는 만큼,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형태가 되어서요. 7D 내부에서만 일부 쓰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지금 있는 안드로이드들도 해체해나갈 예정이지만… 원래 잡무 용도로 개발된 만큼, 여기 계시는 동안 후크 선장님의 생활을 도와드리는데는 충분할 겁니다.”
불쌍한 스미. 눈 앞에서 자신이 나중에는 해체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도 그때는 모르더군. 난 스노우의 방을 나와서, 스미를 따라 내 방으로 갈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때, 앞서가는 스미가 나를 힐끔힐끔 보는 게 느껴졌지.
“응, 무슨 일이지? 그… 안드로이드.”
그때는 아직 스미에겐 이름도 없었고, 스노우가 안 달았는지 음성 장치도 없었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스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있는 것 같았단 말이야.
“뭐라고? 나는 안드로이드 아니냐고? 음… 글쎄, 이제 기계 몸이 되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군.”
내 대답에 스미는 신나한 것 같았어. 맞지, 스미? 그래. 그때부터 방으로 가는 동안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군. 원래는 무슨 일을 했었는지, 어쩌다 기계 몸이 되었는지 등등.
“뭐?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거냐고? 아니, 그건 아니야. 원래 나는 악명 높은 해적이었다고. 사고로 너희들처럼 기계 몸이 되었지만. 응? 해적이 뭐냐고? 이런이런, 스
노우라는 그 애송이, 너희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군?”
그래서 난 스미에게 내가 살았던 이야기나, 해적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지. 글쎄,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면, 예전에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가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아. 학교가 뭔지는 전에 이야기 해줬지? 그리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 좁은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끔찍하거든. 누가 그때의 나에게 그 밖에도 다른 세상이 있다고 알려줬다면… 아니, 됐어. 이런 칙칙한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니까.
아무튼 그렇게 스미에게 해적 이야기를 들려주니, 스미가 다른 녀석들, 그러니까 너희들에게 들려줬는지 하나 둘씩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지. 그리고 나는 너희들에게 해적이란 얼마나 멋지고 자유로운 삶인지 알려줬고. 7D니 뭐니, 퀘퀘하고 재미없잖아? 게다가 너희 같은 멋진 녀석들을 해체하겠다고 하다니!
그 뒤에야 너희들 모두 아는 바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마쳐야겠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지만, 역시나 착한 편이 되어서 악의 무리랑 맞서 싸우는 건 멀쩡한 해적이자 선장인 내가 할 일은 아니지. 특히 악당도 해적도 아닌 녀석의 부하가 되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겠어? 게다가 선물이라니! 그야 처음에는 좋았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해적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었어.
해적이란 원하는 게 있으면 빼앗고 약탈하는 것! 그게 바로 해적의 정신이지! 그런데 선물이라니! 게다가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주는 선물이라니! 그건 거래란 말이지. 나도 거래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식량도 탄약도 거래가 아니면 구하기 힘드니까 말이지. 하지만 그건 깔끔한 거래지. 우리 편이 되어달라는 선물? 그건 해적으로서 용납할 수 없지!
그래서 어느 날, 편지 한 장 남겨두고 7D를 떠나기로 했어. 편지 정도야 뭐, 사회인으로서의 예절이라고 해둬야겠지. 내가 기계 몸과 칼을 들고 째버리면, 그건 선물을 받은 게 아니야. 약탈한 거지!
그런 나를 스미와 너희들이 찾아왔고, 함께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너희들도 해적이 되고 싶다면서 말이야. 거절할 이유가 있나! 새로운 부하는 언제든 환영이야! 자유로운 해적의 삶을 동경한다면, 선배이자 선장으로서 너희를 이끌어줘야지!
자, 그렇게 해서 우리 후크 해적단은 이렇게 7D의 편도, 움브라의 편도 아닌 채 자유롭게 라이브러리 월드의 하늘을 떠돌며 오늘도 낭만과 로망을 찾아다니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다들 수고했어. 무엇보다 위치 퀸과 움브라에게 한 방 먹이면서 이렇게 금화를 털어온 게 제일 기쁘군! 스미! 모두에게 럼주를 돌리도록! 오늘은 파티다!
“후우.”
한밤 중. 안드로이드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럼주에 모두가 취한 뒤, 후크는 홀로 갑판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애송이 녀석, 쓸데없이 튼튼하게 만들기는.”
7D의 기술력을 아낌없이 동원해서인지, 후크의 새로운 몸은 싸구려 럼주로는 쉽게 취해주지 않았다. 인간을 위한 럼에도, 안드로이드를 위한 럼에도.
후크는 자신의 정체성 같은 건 고민한 적이 없었다. 늙은이의 몸이든, 젊은이의 몸이든, 기계 몸이든, 한 손이 갈고리든 아니든, 자신은 후크이며 그 외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느 쪽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은 고민거리 같은 게 아니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취하든 취하지 않든, 술은 생각을 불러온다. 특히 그게 지난 일들을 이야기 한 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렇게 갑판에서 홀로 술을 마시면,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해적으로서 다른 해적이나 정부의 해군을 상대로 싸우던 시절, 그 꼬맹이가 살던 작은 섬의 기억…
그 모든 것이 이야기 속의, 허구의 일일지도 모른다. 만들어진 기억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크는 그런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후크는 라이브러리 월드가 마음에 들었다.
이 세계에는 새로운 것들이 가득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후크는 섬에서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숙적이라고 있는 것은 꼬맹이에,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해서 패배하기만 하는 일상. 도전자로서 사는 것도 재밌었지만, 늙어가는 몸과 마음은 점점 젊은이에게 뒤쳐 도태되어 간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다.
늘 똑같은 섬, 늘 똑같은 상대, 늘 똑같은 패배. 그 모든 것에 질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다르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이 가득한 세계.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생각과 세상이 부서지는 공간. 후크는 아주 오래 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귀족과 학교가 모든 것인줄 알았을 때, 그곳을 떠나 넓은 바다를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을.
그렇기에 후크는 자유롭고 싶었다. 위치 퀸도 스노우도, 어째서 그런 자그마한 것에 집착하는지 후크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라이브러리 월드를 지배하든,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건가. 성취감과 달성감은 기껏해야 순간일 뿐, 결국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세상에 질리고 지루하게 되어갈 뿐이다.
내가 그 꼬맹이와 싸우며 느꼈던 것처럼.
기계 몸을 갖고, 안드로이드들과 후크 해적단을 만들고, 후크는 숙적 피터를 찾아갔다. 피터가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로 함께 온 것은 어쩌다 알게 되었으니까.
처음에는 기뻤다. 그토록 노력해도 이길 수 없던 피터를 쓰러트렸으니까. 오히려 처음에는 실망까지 느낄 정도였다. 고작 이런 꼬맹이에게 여태까지 그렇게나 고생을 했나, 하고.
그렇지만 꼬맹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피터는 자신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술수를 써서 갈고리검을 훔치기도 하고, 요즘에는 무슨 이상한 고양이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바다 대신 하늘을 떠돌며, 다른 악당들의 해적단을 털기도 하고, 오늘처럼 은행을 털며 움브라와 싸우기도 하고, 이야기 속 사냥꾼들로 구성된 HUNNT에게 쫓기기도 하고…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환경은 질릴 틈 없는 즐거움을 준다.
“이런 이야기, 그 녀석들에게는 못 하지.”
후크는 술잔을 비우며 중얼거렸다.
안드로이드 해적단은 후크를 믿고 따르고 있다. 아직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어린이와 같은 녀석들은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할 거다.
후크는 현자회의와 7D가 이겨 꽉 막힌 라이브러리 월드가 되는 것도, 움브라가 이겨 위치 퀸의 뜻대로 되는 세상도 싫었다. 가능하면 이대로, 늘 새롭고 혼란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라이브러리 월드가 이어지길 바랐다.
툭, 투둑.
쏴아아아아.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이 이윽고 늘어나, 갑판과 후크를 두드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새로운 일이 시작될 때는 비가 왔지. 집을 떠나 그 지긋지긋한 학교에 갈 때도, 그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도망치듯 쫓겨날 때, 해적이 된 날도 생각해보면 비가 왔던 것 같았다.
그리고 패배와 죽음의 냄새가 곁에 있던, 라이브러리 월드에 처음 왔던 그 날도.
첫 해적선이 불에 삼켜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때도, 그 뒤 몇 번인가의 싸움 끝에 외딴 섬으로 도망쳤을 때도, 그 간악한 꼬맹이에게 팔을 잃었을 때도 비가 왔다.
패배감과 무력감이 그럴 때마다 후크를 찾아왔지만, 후크는 이윽고 싱긋 웃었다. 지금처럼.
한 방 먹었다고 풀 죽어서 자포자기 해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자, 그럼 내일은 누굴 털어보실까?”
후크는 빈 병을 하늘로 던졌다. 높게 띄워진 술병은 이윽고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나, 비와 함께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뜨거워져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후, 하고 한 번 불어주고, 후크는 선장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내일도 즐거운 모험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