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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 시티에 어서 오세요! - 1

The translated version of the Smash Novels will be here soon. Thank you.
“어휴, 피터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자기가 불러놓고.”
“어쩔 수 없지. 피터잖아. 조금만 기다려보자, 신디.”
발을 구르며 하는 신디의 불만에, 스노우는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스노우가 보기에 신디는 배달부 일을 해서인지 시간에 대해 엄격한 것 같았다.
알게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지만, 스노우는 스노우대로 자신의 일 때문에 사람의 생각을 읽는 부분에 민감했다.
그때, 저편에서 탁탁탁탁, 하는 발소리와 함께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
고개를 돌린 둘의 눈에 공원 저편에서 손에 뭔가를 쥔 채 뛰어오는 피터의 모습이 보였다. 신디는 둘 앞에 멈춰 허리를 숙인 채 헉헉거리는 피터를 보며 따지듯 말했다.
“피터! 상자성 앞에서 이 시간에 보자고 했던 건 너잖아!”
“미안하다니까. 그보다 이것 좀 봐봐!”
피터는 신디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내보였다. 모처럼 같이 놀기 위해 하루 휴가까지 냈던 신디는 더 화를 내려고 했지만,
호기심이 앞서 피터가 내민 종이를 바라봤다. 옆에 있던 스노우도 종이를 들여봤다.
“이게 뭐야?”
“꼭 무슨… 지도 같은데?”
종이를 들고 유심히 바라보는 신디와 스노우의 모습에, 피터는 가슴을 내밀며 당당히 말했다.
“에헴! 그 지도는 말이지, 내가 손에 넣은 보물 지도야!”
“보물지도?”
한목소리로 물어보는 둘에게 피터는 더욱 가슴을 내밀어 보였다.
“응! 보물지도! 분명 어마어마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피터는 신이 나서 기대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원래부터 모험을 좋아하는 피터는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피터가 가져온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천천히, 신디가 피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신디의 질문에 피터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길에서 주웠어. 오늘은 운이 좋더라고!”
“보물 지도를 길에서 주웠다…”
“그럴 줄 알았어.”
피터의 대답에 스노우와 신디는 서로를 마주 보며 깊은 한숨을 동시에 내쉬고는, 각자 지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종이를 피터는 재빨리 주워들었다.
“앗, 무슨 짓이야!”
“피터...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엇인가 말하려는 신디를 손짓으로 막으며, 스노우는 침착한 목소리로 피터가 주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 피터. 이건 그냥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거잖아?”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피터의 대답에 스노우의 미소가 순간 흔들렸지만, 스노우는 최대한 자신을 다잡으며 친절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생각해봐, 피터. 보통 보물 지도라는 건, 옛날에 보물을 숨겨둔 사람이 그려둔 거잖아? 종이도 낡았을 테고, 크레파스가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펜이나
만년필로 그리지 않았을까?그리고 보물을 숨겨둔 흔적이니까, 길거리가 아니라 본인이 가지고 있거나, 더 찾기 힘든 곳에 지도도 숨기거나..”
“그럼 이건 요즘 보물을 숨긴 사람이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렸나 보지!”
스노우의 설득에도, 피터는 뭐가 문제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스노우는 웃으며 이제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주무르던 신디에게 말했다.
“나는 할만큼은 한 것 같아, 신디.”
“피터, 딱 봐도 그건 그냥 동네 애들이 장난친 거잖아. 그런 것 때문에 약속 시각에 늦은 거란 말이야? 하여간 정말…”
한심하다는 투를 숨기지 않는 신디의 말에 피터는 변명하듯 외쳤다.
“동네 애들 장난인지 누가 알아! 어쩌면 진짜 보물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르잖아!”
피터의 외침에도 신디와 스노우는 서로를 바라볼 뿐, 동의해주는 기색은 없었다. 피터는 삐졌다는 듯 볼을 크게 부풀리고는 흥, 하고 직접 소리를 내며 등을 돌리고는 말했다.
“됐어! 둘 다 안 믿어준다면, 나 혼자 보물을 찾으러 갈 거야!”
피터의 외침에 신디와 스노우는 깜짝 놀랐다.
“보물을 찾으러 간다고? 오늘 시내에서 놀기로 한 건 어쩌고?”
“그래, 피터. 모처럼 셋이서 시간이 맞은 거잖아? 같이 놀려고 신디는 오늘 하루 배달부 일을 쉬었고, 나도… 음… 아무튼 어렵게 나온 거고.”
“내일이면 누가 보물을 가져갈지도 모르잖아! 나 혼자라도 찾으러 갈 거야, 흥!”
신디와 스노우는 피터를 달래려 했지만, 피터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게다가 피터는 보물 지도를 가져오면 당연히 신디와 스노우도
신이 나서 같이 찾아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실망은 더했다.
완전히 토라진 피터의 모습에, 신디와 스노우는 다시 한번 서로를 마주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의 피터는 뭐라고 하든 듣지 않는다.
신디와 스노우 모두, 일을 하지 않는 피터와는 다르게 어렵게 시간을 낸 거지만, 그 목적은 셋이서 같이 놀려고 한 것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다.
둘은 다시 한번 시선을 교환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알았어. 같이 가면 되잖아.”
“헤헤, 그렇게 나와야지! 자! 그럼 출발하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터는 신난 강아지처럼 고개를 돌려 웃어 보이고는 한발 앞장서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신디와 스노우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 뒤를 따랐다.
이곳은 라이브러리 월드.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곳.
이야기들은 정해진 줄거리를 따라 진행되고, 이야기가 끝을 맞이하면 등장인물들은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다음 여정을 준비하게 된다.
누구도 얼마나 반복됐는지 모를 순환. 하지만 최근 그 흐름에 이변이 생겨났다.
어째서인지 등장인물들은 라이브러리 월드를 빠져나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게 되었고,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은 도중에 영문도 모른 채 라이브러리 월드로 소환되게 되었다.
이야기로 돌아가지 못하고, 라이브러리 월드에서 머물러야 하는 나날들.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그런 라이브러리 월드에 적응하고,
다른 이야기들과 소통하며 라이브러리 월드를 발전시켜나갔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이변 중의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
이곳은 시놉 시티. 라이브러리 월드의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다.
“아, 찾았다.”
“나도 찾았어.”
등 뒤에서 들리는 신디와 스노우의 목소리에도 피터는 돌아보지 않았다.
“스노우는 몇 개 째야?”
“일곱 번째. 신디 너는?”
“이런, 내가 졌네. 난 다섯 번째야. 스노우는 관찰력이 좋구나?”
“사정이 있어서. 신디 너도 대단한데?”
“에이, 별거 아니야. 이렇게나 많은걸.”
화기애애하게 서로를 칭찬하는 신디와 스노우의 대화에, 결국 피터는 참지 못하고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래, 보물지도 많다! 잔뜩 있다! 이제 됐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 하나 또 찾았다.”
스노우는 바닥에서 또 한 장의 보물 지도를 주우며 말했다.
모임 장소였던 시놉 시티 공원을 떠나 얼마 지나지도 않아, 지도를 따라가던 셋은 길바닥에 버려진 한 장의 종이를 발견했다.
종이에는 피터가 가져온 보물 지도의 내용과 똑같은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신디와 스노우는 피터를 말없이 지긋이 바라봤고, 피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길에서 주웠다 이거지…?”
“자! 빨리 다시 출발하자! 지도가 또 있다는 건, 누군가 또 보물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뜻이잖아? 자, 출발!”
신디의 말을 무시한 채 피터는 애써 씩씩한 목소리로 외치고는 다시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도를 따라갈수록, 더 많은 지도가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지도들, 누군가 휴지통에 버린 지도, 바람에 날아가다 벽에 붙은 지도,
꼬마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로 만들어 날린 지도 등등…
“피터, 계속할 생각이야?”
“으으…”
다시 한 장 지도를 주우며 하는 신디의 말에, 이제 기운이 빠진 피터는 신음과 같은 소리를 냈다. 스노우는 자신이 모은 종이 뭉치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애들 장난치고는 제법 많이 만들긴 했네. 누가 정말 여길 찾아줬으면 하는 것 같은데?”
“그, 그래! 맞아!”
스노우의 말에 피터는 다급히 외쳤다.
“스노우 말대로 이렇게나 지도가 많으면, 여기에 뭔가가 있긴 하다는 소리 아니겠어? 애들 장난이면 지도가 다 제각각이겠지! 나라면 그렇게 할 거야!”
“피터야 애들 같으니까 그럴듯하고, 스노우의 말도 그럴듯하네.”
“신디 너…!”
피터는 분하다는 듯 신디에게 말했지만, 신디는 신경 쓰지 않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여길 찾아줬으면 하는 거랑 여기에 뭔가 있다는 건 다른 뜻 아냐? 어쩌면 무슨 가게 광고 같은 걸지도 모르지.”
신디의 말에 스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가능성 있겠네. 이런 마케팅 같은 것도 가능하니까.”
“으으…”
셋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스노우의 동의에, 피터는 다시 기운을 잃었다. 스노우는 눈에 띄게 푹 쳐져 어깨와 머리를 떨구는 피터의 반응에 피식 웃고는, 신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도 그럼 그것대로 재밌지 않겠어? 오늘은 피터에게 시놉 시티를 소개해줄 생각이었지만, 모르는 가게에 같이 가보는 것도 좋잖아.”
“뭐, 그건 그렇네. 나도 그런 김에 모르는 가게들 찾아볼 생각이었으니까.”
신디는 스노우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오늘 셋이 모이기로 한 건 시놉 시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피터를 위해 이곳, 라이브러리 월드에 이미 익숙해진 신디와 스노우가 안내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니까.
신디는 처음 피터를 만났을 무렵을 떠올렸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이변이 일어나고, 많은 이야기가 결말을 맞이하거나 도중에 라이브러리 월드로 오게 되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야기 섬이 되어
라이브러리 월드의 하늘에 소환되었고, 등장인물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했다.
그렇지만 ‘이변’이라는 말에 걸맞게, 모두가 이야기 전체와 함께 온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야기는 이야기 섬만이 덩그러니 소환되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는 많은 등장인물 중 몇 명, 심지어는 홀로 이 세상에 떨어졌다.
신디는 홀로 떨어진 한 명이었다.
마음씨 좋은 새엄마와 착한 새언니들과 떨어져, 신디는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땅에 도착했다.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자신이 살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
거기에 자신은 알고 보니 이야기 속의 인물이었다는 진실.
행복하지만 풍요롭지는 않게 살아왔기 때문에 단련된 생활력으로 이제는 시놉 시티에서 배달부로 일하며 완전히 적응해서 살고 있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게 막막했다. 피터나 스노우와 친해진 것도, 둘 다 홀로 이 세상에 떨어진 또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애들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산책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으니까.”
“아냐! 분명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야! 자꾸 그러면 찾아도 안 나눠준다?!”
특히 피터는 분명 또래일 텐데도 어딘가 어리게 느껴진달까, 천진난만한 소년의 느낌이 있어서 신디는 피터가 마치 동생처럼 느껴졌다. 신디도 새언니들에게 동생으로서
귀여움받으며 챙겨진 기억이 있어서인지, 어쩐지 피터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신디는 지지 않겠다는 듯 외치는 피터의 대꾸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피터. 아무튼 지도를 계속 따라가 보자. 뭐가 나올지 궁금해하는 것도 보물찾기의 묘미 아니겠어?”
“뭐, 그런 거라면야…”
달래는 신디와 금방 순순히 납득하는 피터의 모습에 쿡쿡거리는 스노우. 셋은 다시금 지도를 보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셋이 지도를 따라가기를 한참…
“...아무래도 여긴 것 같은데?”
신디의 말에, 셋은 지도에서 눈을 떼고 정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건물들 사이로 텅 빈 공터만이 있었다.
어느덧 해가 정점을 지나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시간. 외딴곳에 있어서인지 주위에는 세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적한 공터는 어딘지 쓸쓸해 보이고, 건물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보였다.
“응? 응? 진짜 여기야? 여기라고?”
피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지도와 공터를 몇 번이고 번갈아 바라봤다. 신디는 양손을 올린 채 어깨를 으쓱였다.
“아아~ 좀 괜찮은 가게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애들 장난이었어.”
“이건 좀 놀랍네. 이렇게 공을 들였으니까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스노우 역시 믿기 어렵다는 듯, 공터와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거다 싶은 눈에 띄는 요소는 없었다.
지도를 따라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연 보물 지도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말 아이들이 그린 건지, 지도와 길을 알아보기는 어려웠고 셋은 나름대로 모험을 겪으며
이곳까지 도착했다. 건물들 사이의 좁은 골목을 지나기도 하고, 건물들 옥상 사이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정비용 통로를 지나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처음에는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신디와 스노우도 정말 지도 끝에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하게 됐었다.
“그 고생을 하고도 아무것도 없다니… 정말, 요즘 애들 장난은 못됐어!”
처음에는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려던 신디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는 바닥을 걷어차며 말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신디는 생각났다는 듯,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도와 공터를 번갈아 바라보던 피터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야야야야!”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옷도 더러워지고, 피터 너 때문에 레그 파우치도 하나 잃어버렸잖아!”
“미, 미안해! 나, 나중에 갚아줄 테니까!”
“피터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갚아?”
“보, 보물을 찾으면…”
“너 진짜 혼날래?”
스노우는 피터와 신디의 촌극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버둥거리던 피터는 신디의 손에서 겨우 빠져나와서는 떠올랐다는 듯 외쳤다.
“그래! 여긴 공터잖아! 보물 지도에 나오는 보물은 땅에 묻혀있는 법이야!”
피터는 당장 달려가서는 맨손으로 공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신디! 내가 보물을 찾아서 그런 가방 정도는 몇 개든 선물해줄 테니까! 분명해! 예전에 해적이나 하는 녀석들이 땅을 파고 여기에 보물을 묻어둔 거야!”
신디는 스노우에게 물어봤다.
“일리는 있는 것 같은데, 어때?”
“불가능해.”
스노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말했다.
“이 부근이면 인공적으로 증설한 구역일 거야. 예전에 누군가 와서 땅에 묻어뒀을 리가 없지. 그리고 오는 길에 봤잖아?
건물들도 지나왔고, 정비용 통로 같은 곳도 지나왔고. 옛날에 만든 지도였다면, 그런 길이 표시되어 있을 리가 없지.”
“그럼…”
스노우는 열심히 맨손으로 땅을 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발견한, 팻말로 쓰던 것인지 손잡이가 달린 널빤지로 다시 땅을 파기 시작하는 피터를 보며 말했다.
“저대로 아무리 열심히 땅을 파도, 나오는 건 쇠로 된 시놉 시티 골조뿐이야.”
“불쌍하네…”
신디는 기쁨과 환희의 표정으로 땅을 파는 피터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이변 이후, 라이브러리 월드의 인구는 몇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이야기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었지만, 돌아갈 수 없게 된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늘어나게 되며 지금까지의 면적으로는
도저히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라이브러리 월드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이야기 섬들로 이루어진다. 이야기가 라이브러리 월드로 돌아올 때 이야기의 일부도 하늘에 떠 있는 섬으로 넘어오지만,
그 면적은 늘어나는 등장인물들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
거기에 자신들의 공간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도 문제였다. 라이브러리 월드의 중심지, 수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시놉 시티는 여러모로 생활하기 편리했고,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섬을 떠나 시놉 시티로 몰려들었다. 자연히 시놉 시티는 공간이 부족해졌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해졌다.
그 결과 이루어진 것이 시놉 시티에 대한 대대적인 공사였다. 인공적으로 만든 구역들이 시놉 시티를 구성하는 이야기 섬에 추가되었고,
등장인물들은 그곳에 건물을 세우고 새로운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다.
현재 시놉 시티는 크게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가장 최근에 건설되어 다양하고 편리한 시설이 많고 깔끔하지만, 그만큼 들어가기 힘든 상층.
원래 시놉 시티를 구성하던 지역에 다양한 구역들이 추가된, 가장 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중하층.
그리고 원래는 폐기물을 버리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중하층에서도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이 모여 살 게 된 위험한 하층.
지금 세 명이 있는 곳은 중하층의 끄트머리로, 인공적으로 지어진 구역이었다. 피터가 아무리 열심히 널빤지로 땅을 판다고 해도
‘옛날에 누군가 묻어둔 금은보화’를 찾아낼 일은 없었다.
“아파… 힘들어...”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피터는 너덜너덜해진 널빤지를 든 채로 터덜터덜 신디와 스노우에게 돌아왔다.
더러워진 옷과 침울한 표정인 채 기운 없는 모습의 피터를 보자, 신디도 스노우도 피터를 놀리거나 탓하기 힘들어졌다.
“...그래, 고생했어. 피터.”
“레그 파우치는 나중에 물어줘도 되니까, 그렇게 실망하지 마. 응?”
결국 신디와 스노우는 피터 때문에 귀중한 휴일을 날려버리고, 신디의 경우 물질적 피해까지 본 것은 잊어버리고 피터를 위로하기로 했다.
“분명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피터는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는 듯, 고개를 돌려 공터를 바라봤다.
피터가 열심히 삽 아닌 널빤지로 삽질을 하는 사이 또다시 시간이 흘러, 뉘엿뉘엿 해는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공터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푸른색보다는
오렌지색에 가까워지고, 어느새 긴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자 피터는 고향 생각과 날아간 보물에 대한 기대가 떠올라, 다시 조금은 슬퍼졌다.
“...응?”
그리고 피터는 그렇게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피터, 어디 가?”
갑자기 몸을 돌려 터덜터덜 공터로 향하는 피터의 모습에 신디는 물었다. 하지만 피터는 신디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피터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글쎄…? 꼭 뭔가 발견한 것 같은데.”
신디의 물음에 스노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스노우가 보기에 피터는 뭔가, 자신과 신디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스노우는 피터가 터덜터덜 향하는 공터를 유심히 살펴봤지만, 뭐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뒤에서 신디와 스노우가 걱정하는 걸 모르는 채, 피터는 공터의 경계에 도착했다. 피터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공터의 경계를 더듬어봤다. 물론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피터는 이상하다는 듯 자신의 손과 공터를 번갈아 바라봤다. 신디와 스노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갑자기 피터가 무슨 짓을 하는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피터는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손끝에 뭔가 감촉이 느껴졌다.
등 뒤에 있는 신디와 스노우의 눈에는 마치 피터가 갑자기 팬터마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터는 이번에는 양손을 뻗었다. 역시 손끝에 감촉이 느껴졌다. 피터는 확실히 하려는 듯 양 손바닥으로 그 감촉을 퍽퍽 내려쳤다.
이번에는 퍽, 퍽 하고 손바닥이 뭔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신디와 스노우에게도 들렸다. 신디와 스노우는 깜짝 놀랐다.
“뭐, 뭐야? 분명 아무것도…”
“잠깐만, 신디.”
스노우는 놀라는 신디를 말리며 피터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유심히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스노우는 피터가 느낀 ‘무언가’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방금 났던 소리도 그렇고 피터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스노우가 추리하는 사이, 피터는 계속해서 눈을 감은 채 손으로 허공을 만지고 두드렸다.
그러기를 잠시, 피터는 알았다는 듯 눈을 뜨고는 주먹으로 탕탕, 하고 허공을 쳤다.
“알았어. 여기 있는 건 집이야.”
피터가 만족스러운, 당당한 미소를 지은 채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집이라고?”
다음 순간, 신디와 스노우의 눈에는 순식간에 공터가 건물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당황하던 신디도, 평소에는 누구보다 침착하던 스노우도 한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신디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피터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마치 자신이 이겼다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봐봐! 역시 뭔가 있잖아! 그 보물 지도는 진짜였던 거야!”
스노우는 놀란 마음을 달래며 갑자기 나타난 건물을 찬찬히 살펴봤다. 작은 2층 주택이었다. 주변 건물들과는 분위기가 홀로 달랐지만, 이전에는 생활감이 있는
아담한 집이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전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꽤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되었는지 벽에 칠한 색은 빛이 바래고, 유리창은 깨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누군가 드나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피터의 억지에 맞춰주는 정도였고, 애들 장난이거나 할 거라 생각했던 스노우도 눈앞에 보인 광경에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이야기가 모인 라이브러리 월드에는 마법이나 신기한 일이 드물지 않았다. 마법사나 동화 속에 나오는 환상의 생물들도 함께 살아가는 곳이니까.
하지만 이런 구석진 외딴곳에, 어떤 마법이나 신기한 방법을 써서 집을 숨겨둔다? 게다가 그 위치를 적은 지도를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뿌려둔다?
거기에는 어떤 음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모여서 놀 생각에 평소의 일을 잊고 마음을 놓고 있던 스노우였지만, 곧 그 마음은 신디와 피터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으로 변했다.
차갑고 냉정한, 거대기업 7D의 대표이자 악의 조직 움브라와 싸우는 평소의 스노우의 모습으로.
“그럼 어디 한 번 보물을 찾아보실까!”
“기다려, 피터!”
신이 나서 피터가 문을 열려는 순간, 스노우가 재빨리 외쳤다. 그 큰 목소리에 피터도, 신디도 깜짝 놀라 스노우를 바라봤다.
“무, 무슨 일이야 스노우?”
눈을 깜빡이며 물어보는 피터에게 스노우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도, 누군가 이런 집을 그냥 숨겨뒀다는 건 이상해. 어쩌면 움브라의 비밀기지 같은 걸지도 몰라.”
움브라. 그 단어에 신디는 움찔, 하고 몸을 떨었지만, 피터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움브라가 뭔데?”
“피터… 너 그런 것도 모르는 거야?”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신디의 말에 피터는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그야 아무도 알려준 적 없는걸. 들어본 적도 없고.”
“움브라는 라이브러리 월드와 시놉 시티를 위협하는 악의 조직이야.”
스노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 이야기의 악당들이 모여서 만든 비밀 조직이지. 이곳 시놉 시티에서도 여러 악행을 저지르고 있어. 방화를 일으키거나, 은행을 습격하거나…”
“게다가 소문으로는, 사람들을 몰래 납치하기도 한대! 무슨 마법 실험 같은 거에 쓰기도 하고… 설마 그런 일까지 할까 싶지만...”
스노우의 설명에 덧붙이던 신디는 말하기만 해도 무섭다는 듯 몸을 떨었다. 스노우는 그런 설명에도 여전히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는 피터에게 말했다.
“움브라의 수장, 위치 퀸은 무서운 악당이야. 그런 소문들에 나올 무서운 일도 태연하게 저지를만한, 반드시 쓰러트려야 하는. 여기도 그런 움브라의 숨겨진 기지일지도 몰라.”
“아…”
신디는 스노우의 설명에 뭔가 덧붙이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금방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터는 그런 신디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스노우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스노우가 신디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피터는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튼 악당들이라는 거잖아? 난 그런 거 겁 안 나. 악당들을 물리치는 게 원래 내 일이었다고!
오히려 여기 그런 녀석들이 있다면 혼쭐을 내주면 보물도 찾고 유명해지기도 하고 좋은 일이잖아?”
“뭐?”
그리고는 피터는 스노우가 되묻는 사이, 멋대로 정문 손잡이를 돌렸다.
“이 바…!”
신디는 반사적으로 외치고는 재빨리 피터에게 달려갔다. 시놉 시티 최고속의 배달부라고 자신하고 인정받는 자신의 속도를 믿고. 그렇지만 신디가 피터를 낚아채는 것보다,
피터가 문을 마저 여는 것이 더 빨랐다. 뒤늦게 달려가려던 스노우는 몸을 돌리고, 신디는 피터를 넘어트리며 자신도 바닥에 넘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라?”
“아야야야야야… 뭐 하는 거야, 신디! 아프잖아!”
바닥에 넘어진 채 신음을 흘리는 피터를 무시하며 신디는 주위를 살폈다. 그렇지만 걱정했던 대로 폭탄이라도 터진다든지, 무슨 이상한 마법이 걸려있어서
개구리로라도 변한다든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신디는 피터를 깔아뭉개고 있던 몸을 일으켜 집 안을 들여다봤다. 등 뒤에서 스노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대로 움브라의 기지는 아니었나 보네.”
스노우의 말에 신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안은 기지라기보다는 창고와 같은 느낌이었다. 커다랗고 작은 나무 상자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원래 집 안에 놓여 있었어야 했을 집기들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피터는 넘어져서 아픈 부분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나 참, 왜 갑자기 넘어뜨린 거야?”
“미안, 피터. 난 혹시 뭔가 함정이라도 있을까 봐…”
투덜대는 피터에게 신디는 머쓱하다는 듯 뒷머리를 문지르며 사과했다. 피터는 신디의 사과에 마음이 풀렸는지 상자들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근데, 이 상자들은 뭐지? 여기 보물이 들어 있는 건가?”
“피터… 지도는 네가 맞았고 뭔가 있는 것도 맞았지만, 그렇다고 꼭 보물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왜? 지도도 사실이었고 숨겨진 집도 사실이었잖아. 그럼 진짜 보물 지도라는 뜻 아니겠어? 그럼 여긴 보물이 들어있을 테고 말이야!”
한숨을 내쉬며 걱정하는 신디의 말에도 피터는 히히 웃으며 상자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움찔하는 신디와 스노우의 반응에,
피터는 찌릿, 하고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이번에는 넘어뜨리지 마.”
“으음…”
피터의 말에 그럴 생각이었던 신디는 움찔, 하고 몸을 움츠리며 스노우를 바라봤다. 스노우는 팔짱을 끼고 생각하듯 소리를 냈다.
움브라의 비밀기지는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숨긴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입구는 아니더라도, 어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문보다는 오히려 이쪽에 함정이 있는 것이 더 말이 될지도 모른다.
“뭐, 괜찮을 것 같아.”
하지만 스노우는 피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생각이 지나쳤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바닥의 흔적이나 상자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다시 살펴보니,
짐들은 꽤 빈번하게 옮겨진 것 같았다. 들어오고 나가고. 그런데 함정을 설치해둔다면 옮기는 과정에서 번거로울 가능성이 높다. 내용물은 알 수 없지만,
상자 자체는 안전하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헤헤, 그럼 한 번 열어보실까!”
스노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피터는 신이 나서 제일 커다란 나무상자로 다가갔다. 손으로 열어보려고 했지만, 못이 박혀있어, 피터는 이야기 속에서부터 늘 들고 다니던
단검을 꺼내 못으로 박힌 판자를 비틀어 열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나 호기심이 동한 신디와 스노우도 피터의 옆에서 상자 안을 바라봤다.
순간, 눈 부신 빛이 보인 것 같았다. 상자 안에서 빛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저무는 석양의 황금빛이 반사되어서인지 노란 빛깔은 더욱 선명했다.
황금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의 황금이었다.
피터는 환하게 웃고, 신디는 입을 쩍 벌렸으며, 스노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역시 보물이었어!”
“잠깐, 잠깐! 정말 금이야 이거? 진짜?”
“이럴 수가…”
상자 안에 있는 황금은 다양했다. 사각형의 반듯한 금괴도 있었고, 세련된 디자인의 반지도 있었으며, 팔찌나 왕관도 있었다. 금화도 가득했다.
어느 것이고 아름답게 세공되어 있어, 장인의 손길이 닿은 것이 느껴졌다. 피터는 금화를 들어 올려 짤그랑, 짤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트려 봤다.
신디는 감히 자신이 잡아보는 것도 미안하다는 듯 어쩔 줄 모르며 그저 내용물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스노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마치 감정하듯 내용물을 살펴봤다.
“진짜야. 진짜 황금이야.”